미국 에너지부의 ‘American-Made Challenges: Perovskite Startup Prize’ 소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새로 열린 공모인가 싶었는데, 원문을 확인해보니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이 상은 2021년에 시작해 2024년 7월에 끝난 프로그램입니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엔 아깝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례가 요즘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키우는 방식, 특히 ‘연구를 회사로 바꾸는 방식’을 꽤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제 눈에는 상금 뉴스라기보다 제조업 스타트업을 다루는 미국식 매뉴얼처럼 보였습니다.
총 300만 달러보다 눈에 띈 설계
미 에너지부 태양에너지기술실(SETO)은 이 프라이즈를 총 300만 달러 규모의 2단계 대회로 운영했습니다. 목표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를 실험실에 묶어두지 않고 미국 안의 새 회사와 제조 역량으로 연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상금 구조도 흥미롭습니다. 1단계인 Countdown Contest를 통과하면 2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최종 단계인 Liftoff Contest 우승팀은 현금 50만 달러를 받았고, 여기에 기술지원 바우처 10만 달러가 붙었습니다. 모두 합치면 한 팀이 최대 70만 달러 현금과 10만 달러 상당의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셈입니다.
저는 여기서 ‘돈을 얼마 줬나’보다 ‘어떤 조건으로 줬나’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가팀은 기술과 사업 전문가를 모아야 했고, 사업 계획에는 측정 가능한 목표가 필요했습니다. 최종 단계에서는 페로브스카이트 셀과 모듈의 제3자 검증도 요구됐습니다. 발표 잘하는 팀보다 실제 제품에 가까운 팀을 고르겠다는 의도가 읽힙니다.
페로브스카이트가 뭔데 이렇게 밀어줄까
페로브스카이트는 태양전지에 쓰이는 차세대 소재로 자주 언급됩니다.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와 다른 방식으로 빛을 전기로 바꾸며, 얇고 가벼운 형태로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건물 외벽, 차량, 유연한 패널 같은 응용처가 계속 거론됩니다.
문제는 늘 같습니다. 작은 실험 장치에서 성능이 좋아도 밖에 오래 두면 버티는지, 크게 만들어도 품질이 유지되는지, 공장에서 반복 생산해도 수지가 맞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DOE 페이지도 상용화를 위해 성능뿐 아니라 안정성, 제조, 시장성이 함께 풀려야 한다는 맥락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IT 스타트업과 기후테크의 가장 큰 차이라고 봅니다. 소프트웨어는 배포 뒤에 고쳐가며 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태양전지 같은 하드웨어는 소재, 장비, 인증, 생산라인, 고객 테스트가 줄줄이 붙습니다. 아이디어가 좋아도 혼자 버티기 힘듭니다.
우승팀 Verde가 보여준 방향
DOE는 2024년 1월 30일 Liftoff Competition의 최종 우승팀으로 Verde Technologies를 발표했습니다. 이 회사는 버몬트주 벌링턴에 있는 스타트업입니다. DOE 설명에 따르면 Verde는 가볍고 유연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광 모듈을 미국 내 제조 방식으로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코팅’입니다. Verde는 연구실 수준의 페로브스카이트 성과를 상업 생산에 가까운 공정으로 옮기는 역량을 강조했습니다. 자체적으로 Verde Slot Coating이라는 용액 공정 장비도 언급됩니다. 쉽게 말해 좋은 재료를 종이처럼 넓게, 균일하게 바르는 제조 기술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이 대목에서 스타트업 평가 기준이 달라집니다. 논문 성과만 묻는 게 아닙니다. 공정으로 옮겼는지, 산업 파트너와 시험했는지, 투자자를 설득했는지, 실제 시장 수요를 확인했는지가 같이 봐야 할 항목이 됩니다. 기후테크에서는 기술과 사업이 따로 놀면 속도가 잘 나지 않습니다.
한국 스타트업에 주는 힌트
이 프로그램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지원하세요’ 같은 이야기는 맞지 않습니다. 대신 구조는 남았습니다. American-Made Challenges는 상금, 국립연구소, 산업 전문가, 멘토, 시설 접근을 하나로 묶어 스타트업을 밀어주는 방식입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전력청 페이지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2018년 시작 이후 여러 에너지 분야에서 운영됐고, 참가자 프로젝트에 현금과 인센티브를 지급해 왔습니다.
한국에서도 정부 지원사업을 볼 때 저는 이제 금액만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얼마를 주는지보다 누가 검증해주는지, 어떤 장비를 쓸 수 있는지, 실증 고객을 만날 수 있는지, 후속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제조 기반 기술은 지원금만 받아서는 다음 문으로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페로브스카이트 프라이즈는 태양전지 뉴스이지만, 넓게 보면 딥테크 스타트업 육성 뉴스입니다. 연구자가 창업자가 되고, 창업팀이 제조팀이 되며, 제조팀이 시장 앞에 서는 과정. 그 사이의 빈틈을 정부가 어떻게 메울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입니다.
독자로서 저는 이 뉴스를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기술 패권은 발표 자료의 큰 단어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작지만 촘촘한 프로그램, 검증을 통과한 팀, 공장으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들로 쌓입니다. 한국의 기후테크 지원도 이제 ‘선정’보다 ‘실제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더 집요하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
출처: U.S. Department of Energy, American-Made Challenges: Perovskite Startup Prize https://www.energy.gov/cmei/systems/american-made-challenges-perovskite-startup-prize
참고: U.S. Department of Energy, Solar Energy Prizes and Challenges https://www.energy.gov/cmei/systems/solar-energy-prizes-and-challenges
참고: U.S. Department of Energy, Our American-Made Challenges https://www.energy.gov/oe/our-american-made-challenges
